마을 만들기가 뉴타운 대안 되려면 한형식 부소장

마을 만들기가 뉴타운 대안 되려면

치솟은 전셋값 탓에 아파트 생활을 접고 다가구 주택으로 이사했다. 집안 곳곳에 핀 곰팡이와 물이 샌 흔적 탓에 대대적인 집수리를 하고 입주했다. 하지만 이번 폭우에 또 물이 새 버렸다. 주거환경의 불편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불법주차로 막혀 있는 좁은 골목길을 볼 때 응급환자가 발생하거나 불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이 들고, 택배를 받기 위해선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하며, 가파른 언덕길은 나이 든 분들에겐 벅차다. 이 모든 문제들은 잘 조성된 아파트로 가면 해결된다. 돈이 문제일 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한 의문도 이런 것이다. 마을 만들기는 낡은 집을 고쳐 살고 열악한 기반시설을 공공의 도움으로 보완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마을 만들기가 정서적, 문화적 장점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물질적 조건의 열악함을 은폐하려는 것은 아닌가? 박 시장은 성냥갑아파트만 들어선 삭막한 도시와 다양한 주거환경을 가진 따뜻한 마을을 단순 대비시킨다. 하지만 실상은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마을 만들기 사업은 박 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과 맞닿아 있다. 기존 뉴타운 사업의 한계는 분명하다. 하지만 장점도 있었다. 광역개발을 통해 기반시설 문제를 기술적으로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뉴타운 사업이 골칫덩어리가 된 것은 이 사업을 민간에 떠넘겨 버렸기 때문이다. 재정을 투입할 의지가 없었던 정부는 민간건설업자들과 가옥주들에게 도시를 재구성할 권리와 책임을 내맡겨 버렸다. 국가가 가지고 있던 합리적 통제수단들마저도 상당수 포기해 버렸다. 국가가 재정을 투입할 의무를 민간에 넘기려면 그 대가로 많은 이익을 보장해 주어야 했다. 개발이익이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적을 압도하게 되었다. 도시 전체를 고려한 다양한 주거형태와 주민들의 의사 따위는 개발 이익 극대화를 위해 무시해야 했다.

개발 이익을 보장해 주는 대표적인 특혜가 용적률 상향이다. 1970년대 이후 서울의 아파트 허용 용적률은 최대 400%까지 치솟았다가 고밀화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200%로 떨어졌다. 뉴타운 사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명분으로 다시 300%로 올라갔고 지금은 200% 내외다. 늘어난 용적률은 도시를 흉물로 만들었고 민간의 사업주체들은 힘센 순서대로 늘어난 이익을 나눠 가졌다. 제일 힘없는 세입자들은 거의 아무런 몫도 받지 못하고 삶의 기반에서 쫓겨났다. 영세 가옥주가 그다음 순서였고 이제 대부분의 가옥주들도 조합, 시공사와는 물론 자기들끼리도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지경이 되었다. 용산참사도 그 와중에 일어난 것이다. 결국 국가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재개발은 문제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서울시의 재정이나 에스에이치(SH)공사의 자금을 대규모로 투입할 의지가 없다면 기반시설 개선은 불가능하다. 기존 재개발처럼 민간 건축업자들에게 특혜를 주고 그 일부를 기반시설 확충에 쓰도록 하는 것도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불가능하다.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기존의 낡았지만 공동체적 삶이 유지되는 마을과 새로 지은 편리한 아파트를 같은 금액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주거형태를 택할 것인가? 나는 지금 상황에서 마을 만들기를 선택하는 주민들의 가장 큰 동기는 돈이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돈이 문제다.

마을 만들기 사업이 대안적인 주거형태를 만들 수 있으려면 국가가 제 의무를 다해야 한다. 국가가 최소한의 자금만 투입하고서 주민들에게 불편은 잊고 대신 정을 나누고 살라고 설득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삶의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 주민들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책임이라고 해서는 곤란하다. 주민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마을을 만든다는 것의 의미가 국가는 손 놓고 있을 테니 주민들끼리, 특히 못사는 사람들끼리 궁여지책이라도 만들어 보라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기본적인 일도 하지 않을 거라면 국가가 왜 존재하는가? 주거 방식의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돈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 국가는 이제라도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재정이 부족하다면 메울 방안을 찾는 것이 국가의 일이다.

한형식 당인리 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 한겨레 기고문

덧글

  • 폴레 2013/07/22 08:59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지난주 방아골에서 선생님 강의 들었던 복지사입니다~
    세상이 논리로만 이해되고 상식이 통한다면 지금처럼 돌아가지는 않겠지요.
    이기심과 욕심 그러한 마음들이 민주주의를 교묘히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의 마을만들기의 문제점을 지켜보고 있고, 일면 문제를 더 가중시키고 있는 입장에서
    선생님의 의견에 동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돈'문제로 결국 귀결되는 우리의 삶에 씁쓸함과 좌절감도 있습니다.
    못사는 사람들의 절박함은 돈이 다 해결해 준다고 하여 그 또한 자본의 논리, 신자유주의의 바퀴에 편입되는 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을사람들을 조직하여 '힘'을 갖게 하고 문제들 중 큰 것들은 정부에 적극 요구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 '마을만들기'라고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가능할런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직주일체의 마을을 만들어 가는 게 소망입니다.
    가난한 사람들끼리 정으로 뭉쳐서 죽을때까지 궁상맞게 그렇게 살라는 게 아니라
    우리네 삶의 패러다임도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방식 생태적으로 전환해야만 그것이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간디의 마을 스와라지를 개념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시대착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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