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로부터 안철수까지, 사회적 시장경제가 뭐기에? 김성구 소장

김성구(한신대 국제경제학과,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소장)


출처: 미디어오늘, 2013. 6. 30.


 

지난 19일 안철수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창립기념 심포지움을 통해서 드디어 안철수의 새정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일 이사장인 최장집 교수에 의해 제시된 새정치의 이념적 좌표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안의원의 측근 송호창 의원은 이 진보적 자유주의가 독일 집권보수당인 기독교민주연합(CDU)의 정치적 지향과 유사하다고 했다. 최장집 교수도 발표문에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자신도 참여했던 김대중 정부의 민주적 시장경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했고, 진보적 자유주의를 실현할 경제모델로 보았다.

그간 안개에 싸여있던 안철수의 이른바 새정치란 이렇게 풀어놓고 보니 새로운 것은 전혀 없는 셈이다. 안 의원이 자신의 이념을 위해 정치를 해온 것도 아니었고, 거꾸로 정치를 하겠다고 이념과 정책을 급조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최 교수가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정치상품으로서 포장을 하고자 했어도, 다원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사회적 시장경제는 모두 정치학과 경제학의 오래된 서고에서 꺼낸 것이고, 정치경제적 실천에서 이미 역사적 평가를 거친 것이다.

현실 정치권에서 하나같이 새로운 게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손학규 민주당 전대표, 유시민, 이정우 교수 등 노무현 정부의 인물들이 모두 진보적 자유주의를 내걸었다는 것이다. 또 주지하다시피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차용한 민주적 시장경제를 내걸었었다. 아무래도 새정치로 다시 들고 나올 대상은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사회적 시장경제가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주장은 정말 사실과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독일 CDU는 유럽의 대표적인 보수정당인데, 보수당의 자유주의가 진보적 자유주의일 수가 없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독일 신자유주의(질서자유주의)의 경제사상이자 경제정책으로서 보수적 자유주의를 표현한다. 최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경제사상적으로 진보적 자유주의란 케인스의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를 지칭하는 것이다.

최 교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진보’의 의미가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상처를 정정하고 치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독일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는 결코 이런 의미에서의 진보가 아니다. 1980년대 이래 독일에서 사민주의와 케인스주의의 역사적 성과를 해체시키고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가져온 반동의 중심이 바로 CDU의 사회적 시장경제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교조적인 신자유주의 긴축으로 유로존의 현재 위기를 심화시키고 더블딥에 빠지게 한 것도, 신자유주의 구제금융으로 그리스 등 채무위기국가를 긴축과 침체 그리고 사회보장 해체로 몰아가는 것도 유로존 헤게모니 국가인 독일과 그 집권당 CDU인 것이다. 결국 최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신자유주의로 극복하겠다는 것인데, 이건 진보는커녕 새정치도 아니며, 다만 대중들을 현혹시키고 기만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이미 1990년대 초 김영삼 정부 때부터 수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뉴라이트의 중심인물인 안병직 교수 그룹과, 이진순 전 KDI 원장 등 경실련 주변의 경제학자들이 선구적으로 사회적 시장경제를 한국경제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민주적 시장경제를 집권전략으로 제시한 김대중 정부에서는 사회적 시장경제가 정부의 공식적인 경제정책으로서의 위상까지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렇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경제학자들 대개가 알게 모르게 사회적 시장경제론에 입각해있다. 뉴라이트로부터 민주당, 이른바 진보적 시민단체 그리고 안철수 진영까지 모두 똑같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내세우면서 보수니 중도니 진보니 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색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의 보수파와 중도파 그리고 이른바 진보파까지 경제정책의 뿌리가 동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색채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근본이 다른 것은 아니다. 필자로서는 보수파 뉴라이트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아마도 이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가장 일관된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원래 보수적 자유주의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시장경제가 진보로 둔갑되어 이른바 진보진영의 경제정책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실로 한국 진보운동에 있어 블랙 코미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진보진영이 기대하는 독일의 높은 사회복지 수준은 사회적 시장경제가 가져다 준 것이 아니다. 그건 한편에서 사회주의와 사민주의 그리고 노동조합의 강력한 힘과, 다른 한편에서는 제국주의 국가 독일의 높은 생산력 때문이다. 생산력 수준이 독일에 못 미치는 우리나라에서 획기적으로 사회복지 수준을 높이고자 한다면, 사회적 시장경제를 버리고 사회주의와 사민주의 운동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진정으로 이 시대 진보의 길이다.



덧글

  • 지나가다 2013/07/01 17:33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신자유주의(질서자유주의)는 영미식 신자유주의와 구분되어야 합니다. 질서자유주의는 국가를 통해 시장 자체를 창출하려는 시도였고, 오늘날의 (영미식)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통해 시장을 시장 외부의 영역에 확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CDU는 본래 질서자유주의에서 출발했으나, 세계적 영미식 신자유주의 조류의 영향을 받아 영미식 신자유주의로 전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최장집 교수가 추구하는 것은 영미식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질서자유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영미식 신자유주의나 질서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타당합니다. 하지만 최장집 교수가 신자유주의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고 한다는 비판은 영미식 신자유주의와 질서자유주의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잘못된 비판으로 생각됩니다.
  •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2013/07/02 01:46 # 답글

    맞습니다. 영미식 신자유주의와 독일 신자유주의(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를 구분하는 건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도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가 쟁점으로 제기된 1990년대 초이래 양자를 구별하는 것에 주의를 환기시키곤 했습니다. 진보진영에서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고 하면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끌어오곤 했기 때문이죠. 진보이론가들이 사회적 시장경제가 독일 신자유주의라는 걸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건데, 그래서 나로서는 신자유주의에 두 개 유형이 있고 사회적 시장경제도 신자유주의의 한 유형이란 걸 강조했던 겁니다.

    이렇게 보면, 최장집 교수가 안철수를 내세워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행태도 이전에 진보진영에서 하던 행태와 조금도 다를 게 없습니다. 낡은 행태에 새정치라는 포장을 씌운거죠.

    CDU는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시장경제에 입각해 있고 영미 신자유주의와는 다릅니다. 영미 신자유주의로 전환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의 양상도 독일과 영미권이 유형적으로 좀 상이하죠. 하지만 신자유주의라는 성격은 공통의 기반입니다. 독일 신자유주의는 국가정책을 통해 자유주의 시장질서를 확립하자는 것이고, 영미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방임하에 자유주의 시장질서가 확립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둘 다 자유주의 시장질서를 이념으로 추구하죠.

    물론 사회적 시장경제도 전후 부흥기와 비교하면 1980년대 이래 '사회적'보다는 '시장경제'로 강조점이 이동하긴 합니다. 강조점이 이동해도 영미형 신자유주의와는 다릅니다. 독일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주도한 건 영미형 신자유주의로 전환한 사회적 시장경제가 아니라 사회적 시장경제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영미형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독일 사회적 시장경제로 정정할 수는 없는 겁니다. 최 교수가 신자유주의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 한다는 위의 비판은 이런 맥락에서 쓴 것이고, 내가 영미식 신자유주의와 질서자유주의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 지나가다 2013/07/02 15:33 # 삭제 답글

    선생님의 상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질서자유주의 자체의 한계로 인해 질서자유주의의 (오늘날과 같은) 변형이 초래됐다는 말씀의 맥락을 제가 놓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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