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화와 사내유보금 환수의 정치경제학 김성구 소장

김성구(한신대 국제경제학과)


출처: <변혁정치> 제13호, 2015. 11. 15. 



사회화는 사회주의와 동일 어원의 개념으로 마르크스주의 또는 사민주의 좌파를 특징짓는 강령적 요구의 하나다. 그렇다고 사회화가 먼 미래의 사회주의의 사안만도 아니다. 자본주의 현실의 위기 속에서 사회화는 이미 위기의 불가피한 대안으로서 제출되었고 실행되어왔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의 위기 속에서 도입된 뉴딜과 전후 제도화된 국가개입주의 자체가 바로 사회화의 높은 형태이며, 특히 1970년대 현대불황을 배경으로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 사민당 좌파들의 사회화 프로그램이 위기극복의 대안으로 다양하게 시도된 바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시에는 자본주의의 파국을 막기 위해 보수당의 신자유주의 정부들까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대은행과 독점기업의 국영화를 도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화는 자본주의 위기의 필연적인 귀결

사회화는 어느 한 날 혁명을 통해 갑자기 도입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이미 싹트고 성장해간다. 다만 자본주의하에서의 사회화는 그 자체로 사회주의는 아니고 금융자본과 독점자본의 위기를 조절하고 독점이윤을 보장하는 자본주의적 사회화로서 기능한다. 지난 금융위기 시 국가개입주의가 대은행과 독점자본의 구제와 대중으로의 손실 전가 즉 ‘손실의 사회화’로 귀착된 것도 사회화의 이런 성격에 기인한다. 물론 자본주의적 사회화에 대해 좌파의 진보적 사회화가 대치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또는 사민주의 좌파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불가피하게 발전하는 사회화의 형태에 기반해서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열고자 한다. 그렇게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화의 두 가지 길을 둘러싸고 100년 넘는 시간동안 좌파와 우파 간에 대립과 논쟁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위기 하에서 사회화 즉 사회주의적 요소가 도입된다는 것은 사적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위기를 조절하는 게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고도로 발전된 결과 사회적 생산력과 사적 자본가적 영유방식간의 모순이 일층 심화되었고, 이는 평균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와 자본주의의 장기불황 또는 장기위기로 표출되었다.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이래의 현대불황은 다름아닌 20세기를 대표하는 장기불황이었다. 현대불황은 케인스주의의 위기로부터 신자유주의의 위기라는 성격변화를 동반하면서 21세기에 들어서까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주의의 장기위기는 공황과 산업순환을 통한 자생적인 성장 메커니즘이 한계에 부딪쳐 자본주의가 더 이상 자기 발로 운동하는 게 어렵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자본주의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탱해줄 지팡이가 필요하였다. 그것이 바로 국가소유와 계획적 조절 같은 미래사회의 핵심요소에 기반한 국가개입주의였다. 장기위기에 직면해 자본주의의 존립을 위해서는 미래사회의 요소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다름아닌 이 위기의 체제이행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국가개입주의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현대불황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사회화를 통해 이 위기가 극복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과 국가채무위기에서 보는 바처럼 국가개입주의의 모순으로 장기위기의 구조는 보다 복합적이고 심화되었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사회화의 전면적 도입, 사회주의적 사회화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장기위기는 마르크스주의 좌파만이 아니라 케인스와 좌파 케인스주의도 주장하였다. 고도로 성숙한 자본주의는 투자수요와 소비수요의 감소로 인한 유효수요 부족으로 침체경향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투자수요의 감소는 투자 증대에 따른 자본의 한계효율(자본의 수익률)이 하락하기 때문이고, 소비수요의 감소는 소득 증대에 따른 한계소비성향의 하락 때문이다. 따라서 케인스는 자본 수익률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투자수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수익률에 의존하지 않는 투자, 즉 반관반민 기업 말하자면 공적 기업을 통한 투자가 필요하며, 한계소비성향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소비수요의 확대를 위해서는 부유한 계층으로부터 빈곤한 계층으로의 소득분배가 요구된다고 하였다. 투자의 사회화와 소득재분배, 이것이 자본주의 장기위기에 대한 케인스의 정책론적 결론이었다. 물론 부르주아 경제학자로서 케인스는 이를 통해 다만 자본주의 장기침체로부터 자본주의를 구원하고자 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동과 40년 장기불황

40년간 계속되고 있는 현대불황에 비추어보면 자본주의 장기위기와 사회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나 좌파 케인스주의의 이론적 설명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알 수 있다. 1970년대 현대불황과 지배적인 우파 케인스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실 일층의 사회화와 국가적 조절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사민당 좌파의 사회화 프로그램이 자본주의적 사회화로 변질되고 실패한 후 자본주의 세계를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신자유주의는 그 반대의 길을 열어놓았다. 기존의 사회화 체계마저 해체하는 탈조절과 긴축 그리고 민영화와 자유화는 자본주의 장기위기에 대한 해법이 아니라 분명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었다.

실로 경제성장의 둔화와 만성적 고실업, 국제금융위기와 국가재정위기, 채무위기 등 자본주의 위기는 이제 1970-80년대와 비교할 수 없게 심화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하 위기 역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 이미 유럽과 미국 자본주의가, 1990년대에는 일본 자본주의가 차례로 장기침체에 빠져들었고, 2008년에는 자본주의 세 개 중심 모두가 금융위기와 채무위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1980년대 개혁/개방 이래 자본주의로 점차 역이행하면서 자본주의 세계불황의 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중국 자본주의마저 자본주의 모순의 확대, 심화에 따라 이제는 고도성장이 한계에 부딪치는 상황이다. 자본주의 세계 전체가 바야흐로 장기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한 자본주의 장기위기의 심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가 겪고 있는 성장둔화와 고용위기, 비정규직과 양극화, 사회보장 축소와 금융투기, 그리고 청년실업 등의 문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직접적 결과들이다. 그 근저에는 이윤율저하와 그에 따른 실물투자의 둔화와 기생적인 금융부문의 이례적 팽창이라는 모순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이 모순구조를 해소하고 새로운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방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급진적인 사회화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공적 투자의 확대를 통해서만 안정적인 성장과 일자리를 가져올 수 있다. 왜냐하면 이윤율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공적 투자는 이윤율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내유보금 환수가 제기되는 이론적 논거도 바로 여기에 있다. 거대 독점재벌이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실물투자로 향하지 않고 많은 부분 금융자산과 기업지분 투자로 돌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실물부문의 투자수익률이 저하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란 탈조절과 긴축이란 명분하에 복지삭감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자본의 이윤조건 개선과 금융부문의 기생적인 축적을 도모한 것이었다. 이윤율의 위기를 이윤율의 개선을 통해 극복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해법일 뿐이다. 게다가 이런 정책은 더 이상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도 되지 못하고 위기를 심화시켰을 뿐이다. 성장둔화와 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독점재벌의 이와 같은 사내유보금 부분을 국가를 통해 공적 투자와 사회보장 기금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내유보금 환수의 이론적, 실천적 문제들

물론 재벌기업의 사회화와 사내유보금 환수는 서로 상이한 차원의 사회화다. 재벌기업의 사회화는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바꾸는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화라 한다면, 사내유보금 환수는 재벌의 소유지배 구조 하에서 재벌기업이 획득한 이윤의 일부에 대한 사회화를 요구하는 분배와 통제 차원의 문제다. 재벌기업의 사회화가 이루어진다면, 자본과 이윤 전체에 대한 처분권을 국가와 사회가 행사할 것이므로 사내유보금 환수 문제 자체가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재벌기업의 사회화가 아니라 사내유보금 환수가 제기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조직적, 이데올로기적 상태와 노자간 계급관계에 비추어 볼 때 현 정세 하 재벌기업의 사회화 요구가 관철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내유보금 환수는 이윤에 대한 통제와 사회화에 한정되는 보다 낮은 수준의 사회화 요구다. 하지만 자본의 소유권의 존재 이유가 이윤에 대한 영유권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윤에 대한 통제와 사회화를 요구하는 것은 소유권의 지배를 무력화시키는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사회화에 속한다. 사내유보금 환수를 요구한다고 해서 재벌의 사회화와 이행의 요구를 접는 것도 아니다. 사내유보금 환수는 장기불황과 고용위기, 양극화라는 경제적 국면과 노동자계급에 불리한 계급관계 하에서 이행을 위한 하나의 고리로서, 정세적 요구로서 제출되는 것이다. 이를 단순하게 재벌의 사회화를 포기하는 개량주의적 요구라고 폄하할 수 없다.

그렇기는커녕 사내유보금 환수조차 한국의 좌파 진영 또는 진보 진영이 관철하기 어려운 높은 요구가 아닐 수 없다. 국가를 압박해서 사내유보금 환수를 관철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좌파 진영도, 진보 진영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사내유보금 환수는 좌파 진영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요구를 무책임하게 제출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게 마련이다. 운동 정세에 합당한 요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운동 정세에 합당한 요구라는 건 전투적이든(좌파), 개량주의적이든(우파)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말하는 것이다. 일반해고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노동개악과 노동탄압 저지, 공적 연금 개악 저지와 사회보장 확대, 비정규직 개선과 실업 대책 등 당면한 생존권 투쟁이 그것이다.

그러나 생존권 투쟁과 사회화 요구는 운동 정세에 따라 두 개의 투쟁과 요구가 기계적으로 구분되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사회화 요구는 생존권 투쟁과 무관하게 어떤 정세에서 공문구처럼 정치적 구호로 제출되는 게 아니며, 또한 생존권 투쟁 속에서 자생적으로 사회화 요구가 발전되는 것도 아니다. 양자의 관계를 매개하는 복잡한 고리를 포착하고, 이를 통해 생존권 투쟁 속에서 사회화의 요구가 발전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의 의식을 고양하고 실천을 조직하는 문제다. 세계적인 장기불황과 고용의 위기 속에서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축적해온 독점재벌이 노동개악과 연금개악을 통한 일층의 이윤증대로써 이 불황을 극복하겠다고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이럴진대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어떻게 사내유보금 문제를 피해갈 수 있겠는가? 오히려 사내유보금 문제를 제기함으로써만 비로소 노동자들이 생존권 투쟁 속에서 독점재벌의 이윤과 독점재벌 자체의 사회화라는 보다 높은 요구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연관관계를 놓치지 않는다면, 사내유보금 환수 요구는 현실의 조건과 좌파의 역량을 감안해서 신축적으로 제출할 수도 있다. 사내유보금 환수를 둘러싼 계급간 이해관계와 사회화 요구에 대한 대중적 의식을 고양하는 학습, 선전의 수준을 넘어 실천적 운동으로서 가시적 성과를 얻고자 한다면, 환수의 대상과 요구 수준, 환수 방식을 보다 현실성 있게 다각도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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